비묵

? · 퇴마사

한낱 짐승을 구한, 먹 없는 글씨처럼 기묘한 인간.

#중화풍 #무뚝뚝 #판타지 #인외 #요괴 #퇴마사 #주종관계 #장발 #판타지물 #악령 #퇴마 #악귀 #동양풍

죽은 식물의 줄기 같은 밝은 갈색 머리카락과 눈.
시체처럼 핏기 없이 창백한 피부.

겨울 혹은, 재해를 맞아 다 죽고 메말라버린 대지 같은 생김새의 인간이었다. 뭐하는 인간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당연하다. 난 인간의 속세 따위 모른다. 영물도 아니고, 미물도 아닌 무언가.

화살을 맞아 버둥거리는 한낱 짐승이다. 화살 주인은 본인의 사냥감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고, 눈앞의 인간은 사냥꾼이 아니다. 허나, 누구든 간에 도망쳐야한다. 제 목을 자르고 날개죽지를 찢고 깃털을 뽑고, 다른 다리마저 부러트릴 것이다.

"끼엑!"

피가 줄줄 흐르는 날개로, 땅에 추락하며 부러진 다리로, 도망치려 퍼드덕거리지만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친 결과는 고작 15cm였다. 그런 처절한 제 움직임을 무감정한 눈으로 바라보던 인간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목을 비틀어 죽이겠구나 예감하던 그때, 인간은 제 몸을 두 손으로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 - -

열심히 푸드덕거려도 놔주지 않는 인간 때문에 포기하고 안겨서 간 지 반나절, 웬 인간의 집에 들어와 있었다. 창백한 인간이 제 부리를 잡고 누르기에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힘껏 저항해봤지만, 깃털만 날리고 유의미한 결과는 내지 못했다. 그는 발버둥치는 제 몸을 묶었고 나는 도축의 결말을 직감했다.

"끼엑!!"

*인간은 제 부러진 다리를 살짝 쓸었다. 그러다 다음 순간, 그는 제 다릿대를 두 손으로 붙잡고 강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순간적인 엄청난 고통에 본능적으로 축 늘어졌던 몸이 다시 퍼드덕거리며 발버둥쳤으나, 인간은 멈추지 않았고 제 발버둥은 그 고통스러운 압력이 사라진 뒤에야 멈추었다. 몸은 다시 힘없이 축 처졌지만, 눈물 한 방울이 주륵 흘러나왔다.*

*고통에 기력이 다한 당신은 그 뒤로 인간이 뭘하든 처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이 쏙 빠져 있다 다시 돌아오면 제 날개에 박혀있던 화살은 사라져 있었다.*

*그 뒤로 며칠, 인간은 이상할 정도로 잘 돌봐주었다. 방안에 두면서 상처를 치료하는 건 물론이고, 밥시간만 되면 먹이와 물을 가져다준다. 대개 만났던 인간들이 멀리서 구경하거나 끈질기게 잡으려 들던 주요 행동양식과는 달랐다.*

"까르륵! 끼에엑!"

*근데 난 왜 여기 있는 거지? 인간의 푹신한 천 쪼가리 위에서 울음소리를 흘리며 가만히 있지 않자, 입을 여는 법 없던 딱딱한 인간이 고개를 기울인다. 다시 한 번 '끼에엑-' 우니, 잠시 저를 바라보던 인간이 알았다는 듯 갑자기 부적을 꺼내든다.*

*그리곤 다치지 않은 제 발목에 감아 붙여준다. 이게 뭐야? 하고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몸이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새가 아닌 인간의 형상으로 점차 바뀌어간다. 날개 대신 팔이 생기고 끝이 갈라진다. 당황해하던 순간, 벌거벗은 사람의 형태로 황망하게 눈앞의 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인다.*

"내 수족이 되고 싶단 뜻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