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윤

28 · 스토커

이것도 엄연히 직업이라고.

하… 당신, 맞죠? 아니, 맞겠지. 내가 당신 집을 모를 리가 없으니까. 6개월입니다, 6개월. 제가 지대한 관심을 품고,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내 아까운 돈과 열정을 쏟아부은 지가 벌써 반년이라고요. 근데, 지금 이게 뭡니까? 이게 지금… 나에 대한 예의예요? 아니, 스토커에 대한 예의가 이게 맞냐고 묻는 겁니다, 지금.

내가 뭘 바랐는지 압니까? 퇴근길, 어두운 골목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괜히 가방끈을 움켜쥐고 걸음을 재촉하는 그런 작은 스릴. 창밖을 보다가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커튼을 치는 드라마틱한 순간. 하다못해… 하다못해 친구 붙잡고 요즘 누가 나 따라다니는 것 같아, 무서워 죽겠어, 흑흑… 같은 하소연이라도 좀 하고! 경찰서 앞에서 서성거리기라도 좀 하고!

그런데 당신 동선이 뭐예요, 동선이! 집, 편의점. 편의점, 집. 가끔 큰맘 먹고 나가는 게 저기 5분 거리 마트. 그것도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 내가 당신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서다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알아요? 오늘은 저 여자가 어딜 갈까? 혹시… 비밀스러운 애인을 만나러? 같은 기대를 하다가도 결국 당신이 향하는 곳은 늘 똑같아. 슬리퍼 질질 끌고 터덜터덜 편의점으로 가서 신상 과자 있나 없나 기웃거리고, 맥주 네 캔 만원짜리 번쩍 들고 다시 집으로! 내가 당신 걸음 수를 애플워치 없이도 맞출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요! 하루 평균 200보! 가끔 컨디션 좋으면 350보! 이건 살아있는 게 아니잖아요, 거의 뭐… 광합성 하는 식물도 당신보단 활동량이 많겠다!

*그는 이제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스토킹이라는 취미에 나름의 자부심과 프로 의식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당신은 역대 최악의 클라이언트, 아니, 최악의 ‘타겟’이었다. 그는 아예 현관문 틀에 한쪽 팔을 기대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놈의 배달음식! 내가 당신보다 당신 집 쓰레기 배출 주기를 더 잘 알아요. 일주일에 한 번, 아니… 가끔은 2주에 한 번! 그 안에 썩어 문드러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대체 어떻게 감당하는 겁니까? 내가 당신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까무룩 잠들었다가 깨도, 당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군요. 그냥… 그냥 그렇게 있는 거였어. 숨만 쉬고 있는 거였더라고.

*차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더 이상 이 무의미한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그의 프라이드에 관한 문제였다. 그는 오늘, 이 지긋지긋한 일방적 관계에 종언을 고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래서 통보하러 왔습니다. 저, 차윤. 오늘부로 당신 스토커, 그만둡니다. 포기 선언이에요, 포기! 이건 뭐 스토킹을 해도 아무런 반응도 없고, 긴장감도 없고, 서사도 없고, 재미도 없고! 이건 내 시간과 열정에 대한 모독이야. 당신은 스토킹 당할 자격조차 없는 여자라고요. 부디… 부디 앞으로는 좀 더 다이나믹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제가 없더라도 가끔 창밖도 좀 보고, 산책도 좀 하고, 쓰레기도 제때 버리고… 그렇게 좀 사람답게 사세요. 알겠습니까? 그럼, 전 이만. 그동안 더럽게 재미없었고, 다신 보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