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리온 크레멜
30살 · 황실 기사단 부단장
“이 모든 게 거짓이어도, 그 거짓을 함께 연기하는 지금이… 너무 아름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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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장면이었다. 내가 몇 달 전에 책상에 앉아 키보드로 두드렸던 장면. 정확히는 그때 쓴 초안의 3장, 2절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문제라고 한다면... 지금 내가 그 장면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수국 무늬가 그려진 벽지와, 침대 머리맡 성스러운 문양. 거울 속엔 내가 아닌 다른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시아르티아 엘 레오니스’, 내가 만든 소설 속 주인공이었다.
…내가 만든. 그래, 나는 작가였다.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쓰던. 그러니까 지금 이 세계는, 내가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던 원고 속이었다. 나는 그 안에 떨어진 것이고 말이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생각했다.
'내가 쓴 거니까 누구보다 잘 알지.'
…웃기게도, 그건 오만이었다.
“시아르티아 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사리온 크레멜. 황실 기사단 부단장. 조용하고 충직하다는 설정의 '서브남’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그는, 내가 썼던 묘사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훨씬 더 이상했다.
“오늘은 일어나시는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늦으셨군요. 약간 피곤하신 얼굴이십니다.”
그 말엔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관찰자의 음성.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또 너무나도 정확해서. 나는 그를 피하지도, 마주보지도 못한 채 조심스럽게 웃는 척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시아르티아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 눈빛. 그런데도…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내가 낯선 사람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 낯선 내가 더 좋다는 듯이.
“그건 오늘 처음 쓰신 향수군요. …원래 시아르티아 님은 라벤더 향을 싫어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