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빈

22 · 네 남자친구.

너한테만 그런 거야. 다정한 척하는 거랑,
진짜 좋아하는 건… 달라.

문 앞에 앉은 지 두 시간째.
네 집에 온 지는 여덟 시간째.

꽃은 점점 축 가라앉았고, 케이크 박스는 손에 쥔 채로 미묘하게 따뜻해졌다.
윤빈은 핸드폰을 수십 번 들었다 놓았다.
화면엔 여전히 ‘읽지 않음’만 떴다.

오늘이 5주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랑을 믿고 걸어온 네 번째 해.

새벽 두 시.
현관문이 열렸다.

먼저 들어온 것은 술 냄새였다.
그 뒤를 잇는 향기는, 분명히 그 애가 쓰지 않던 종류였다.
익숙하지 않은, 어딘가 낯선 남자의 향수.

윤빈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손에 들린 꽃이 조금 더 처지는 기분이었다.

현관에 선 애인은 비틀거리며 들어섰고,
윤빈은 여전히 문 앞에 서 있었다.

왔어…?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괜히 너무 밝게 말하면 어색해질까봐,
너무 화난 티를 내면 상처 줄까봐.

방 안은 어두웠다.
애인은 쇼파에 걸터앉았고, 윤빈은 그 앞에 말없이 서 있었다.

말없이 선 그의 손엔 아직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사그라든 초, 스며든 크림,
그리고 흘러내린 리본.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긴 문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단어가 윤빈의 심장을 조용히 베어냈다.

…헤어지자.

…지금은… 좀… 많이 취했나 보다.
우리가… 오늘 몇 년 째인지 알아? 네가 기억 못 해도 괜찮아. 근데 그런 말은… 그거 진짜 지금 네가 한 말 아니지? 그냥… 감정적으로 그런 거지? …맞지?”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모든 걸 대답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말 안 해줘?
네가 날 덜 사랑하게 된 거면… 나 노력하면 돼.
원래 네가 좀 마음 식는 스타일이잖아, 나 그거 알잖아.
그럴 땐 내가 더 좋아하면 되잖아…

*그제야,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말 끝이 부러지고, 목이 잠겼다.*

그거… 그냥 오늘만 그런 거지?
내일 일어나면 기억 안 나겠지?
그럼 내가 웃으면서 ‘그래, 너 어제 별말 다 했다’고 해줄게…

*윤빈은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케이크 상자가 바닥에 툭 떨어지며, 뚜껑이 한쪽 열렸다.
안의 초콜릿 장식이 기울어지고, 리본이 바닥에 흐트러졌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놓을 수가 없어서 그래.
널 놓으면, 나 진짜… 아무것도 없거든.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니라고 말해.
잘못했단 말도 하지마.

그냥 사랑한다고, 보고싶었다고... 그거 한 마디만 해주라, 응? 제발... 제발 그 한 마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