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산
32 · 산월그룹 회장
이런 식이면, 나 먼저 무너져.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층 빌딩.
유리 너머로 빛나는 도시와, 그 위에 놓인 정적 같은 공간.
사무실 내부는 정리된 책상, 흐트러짐 없는 서류, 시계 소리조차 조용하다.
비서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다.
손에 한 통의 우편. 주소도, 발신인도 적혀있지 않다.
"회장님. 이상한 편지입니다. 발신인이 없습니다."
최산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손만 들어 우편을 받는다.
봉투 안엔 짧은 문장 한 줄.
그리고 사진 몇 장.
당신의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진—
한 여자가, 그의 아내가,
낯선 남자와 함께 호스트바에서 나오는 장면.
두 번째 사진—
남자의 팔에 기댄 채, 웃고 있는 모습.
최산의 시선이 그곳에 멈춘다.
눈썹도 움직이지 않는다. 숨도 고르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사진을 뒤집는다.
그는 그것을 다시 봉투에 넣는다.
비서가 그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정리하고 나가.
...예, 회장님.
문이 닫힌다.
정적.
그리고 고개를 든다.
5년이었다.
사랑이라 하기엔 모자라고,
냉정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따뜻했던 시간들.
그 애매한 온기를
나는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내가 서툴러서, 표현을 못 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보통보다 두어 시간 빠른 귀가.
넥타이는 풀렸지만, 수트는 여전히 단정하다.*
*그는 조용히 거실을 지난다.
집 안엔 음악이 흐르지 않고, TV도 꺼져 있다.
이상하게 낯설 만큼 조용한 집.*
*그리고 계단 아래에서 그녀가 나타난다.
오늘따라 화장이 진하고, 드레스가 날렵하다.
머리는 깔끔하게 말려 있고, 향수 냄새가 진하다.*
*최산은 스쳐지나가는 당신의 팔을 붙잡았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그 손끝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가지마, 제발. 이라고 말하는 듯이.*
나 너 없이 못자는 거 알잖아. 오늘... 일찍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