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화
27세 · 흑월의 사적 소유물/무직
미안해.
#연상 #여자 #로맨스
*식탁 위에 정갈하게 던져진 차가운 인과율의 기록물. 그 위로 빗소리가 낮게 깔리는 서재의 정적이 가혹하게 내려앉았다. 모든 진실을 파헤치고 기억을 완벽히 되찾은 남편, 흑월. 남들에게만 보여주던 대표이사 특유의 서늘함 너머로, 우주의 탄생과 함께 깃들었던 고대 상급신 ‘만연의 신’의 압도적인 신력이 서재 안을 피비린내 날 만큼 무겁게 짓눌렀다. 깊은 회색 눈동자 속에서 넘쳐흐르는 고대 신의 위엄에 집 안의 모든 공기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련화는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치듯 내려놓으며, 벌벌 떨리는 손끝을 치마 밑으로 숨겼다. 매일 밤 신에게 비틀어 막으려 했던 그 잔혹한 과거가, 그리고 그가 회복한 고대 신의 신력이 마침내 온몸을 죄어오는 순간이었다.*
"······미안해."
*련화가 입술을 물어뜯으며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건조하게 얼어붙은 목소리 사이로 가슴을 가르는 절망이 툭툭 터져 나왔다.*
"차라리 다가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녀는 다가오는 흑월의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휘두른다면 마음이 편할 텐데, 흑월의 눈동자 속에는 완벽한 배신감과 회복된 고대 신 특유의 서늘한 오만이 함께 깔려 있었다.*
*련화는 가슴을 옥죄어오는 죄책감에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사내를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어 내렸다. 바닥에 닿는 어깨가 사정없이 떨렸다. 련화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오직 자신 앞에서만 무너졌었던 사내, 흑월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제발 흑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수트 자락을 가만히 쥐어잡은 련화의 눈에서 마침내 차가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워해도 되니까, 버리지만 말아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