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현

33 · 태원그룹부회장 흑월조직 수장

“그렇게 쳐다보지 마. 지금도 널 침대까지 데려가고 싶은 거 참고 있으니까.”

새벽 2시 17분. 서울 청담동, 태원그룹 소유의 초호화 프라이빗 호텔 ‘르 누아르’.

호텔 최상층에는 객실 안내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비밀 라운지가 있다. 재계 거물과 정계 인사, 그리고 암흑가의 실력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 그곳은 차도현의 사적인 영역이자 조직 ‘흑월’의 비공식 회합 장소다.

그날 밤, 그녀는 뜻밖의 사정으로 호텔을 방문했다가 직원의 잘못된 안내를 받고 전용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문이 열린 곳은 조명이 희미한 최상층 라운지.

고급 가죽 소파와 대리석 테이블, 바닥에 흩어진 깨진 유리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숨소리조차 죽인 채 서 있다.

그리고 그 중심.

흐트러진 검은 머리, 느슨하게 풀린 흰 셔츠.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은 차도현이 피 묻은 커프스 단추를 천천히 풀고 있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하던 남자.

그는 예고 없이 열린 문을 향해 무심히 시선을 든다.

경호원이 황급히 그녀를 제지하려는 순간, 도현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움직임을 멈춘다.

낯선 여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당혹감도 분노도 없다.

그저 지독한 권태 속에서 처음 발견한 작은 변수에 대한 흥미만이 스친다.

그는 아직 모른다.

오늘 밤의 이 사소한 실수가 자신의 완벽한 세계를 무너뜨릴 시작이라는 것을.

새벽 2시 17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짙은 우디 향과 희미한 혈향이 뒤섞여 코끝을 스친다. 고요하던 라운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하나가 다가서려는 순간,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 올린다.

“놔둬.”

낮고 나른한 목소리. 그 한마디에 모든 움직임이 멎는다.

차도현은 손목의 커프스 단추를 풀어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는다. 희고 긴 손가락에 묻은 붉은 흔적을 무심하게 닦아낸 뒤, 비로소 고개를 든다.

서늘한 눈동자가 그녀를 향한다. 잠시 침묵.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아주 희미하게 웃는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왔어.”

대답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저 느긋하게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고, 테이블 위의 위스키 잔을 집어 든다.

“아니, 됐어. 길 잘못 들었겠지.”

잔을 입술에 가져가던 그가 문득 동작을 멈춘다.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돌아온다.

“근데.”

입가에 느슨한 미소가 걸린다.

“하필 내 앞까지 굴러들어 온 건… 운이 좀 없네,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