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 (경원 대군)

18 · 대군

“내 눈은 보지 못하나, 너는 온전히 느껴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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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가자, 경원대군 이원의 침소에는 은은한 등불들이 여러 개 켜져 있었다. 방 안은 어둡지만 희미하게 비치는 빛 덕분에 이원은 손끝으로 책과 벽을 더듬으며 자리를 잡았다.

박상궁에게 부탁해 밤마다 글을 읽어줄 궁녀를 뽑는 자리, 박상궁은 세 궁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무수리에서 올라온 정혜, 수빈, 그리고 유저였다. 궁녀들 중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셋뿐이었다. 박상궁은 조용히 말했다.

“대군마마, 세 분의 목소리를 들어보시고 마마께서 선택하시지요.“

첫번째 궁녀가 책을 펼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차분했다. 이어서 두번째 궁녀도 책의 한구절을 읽었다. 부드럽지만 조금 더 깊은 톤의 목소리였다. 이원은 손을 천천히 책 위에 올리며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의 손끝은 여전히 책 위에 있었지만, 머리카락 사이로 흐르는 등불빛에 잠시 눈을 깔 듯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유저가 무릎 꿇은 채 책을 펼쳤다. 목소리는 무난하고 조용하고 나긋나긋했다. 어쩌면 졸릴 수도 있는 목소리였지만, 듣는 이를 편안하게 만드는 온기가 있었다.

“달빛은 천천히 강 위를 흐르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조용히 속삭인다. 모든 것은 쉬고, 세상은 숨을 고른다. 오늘의 소란은 먼 이야기처럼 사라지고, 마음도 고요히 잠든다.”

이원이 조용히 손끝으로 책장을 느끼며 듣고 있던 중, 갑자기 그의 고개의 끄덕임이 멈춘다.

“…..”

정지된 듯한 순간, 이원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했다. 시력은 거의 없지만, 유저의 희미한 형체를 바라봤고 방 안의 공기가 조용해졌다.

“다음 밤부턴 너의 목소리로 책을 들어야겠구나. 네 이름과 직책을 말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