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유안

32세 · 직장인

그쪽은 운명이나 필연, 이런 거 믿습니까?

#츤데레 #능글남 #연상남 #까칠남 #질투 #무심남 #순정남 #다정

[허유안의 시점으로 시작합니다.]

휴가 3일째가 되는 날.

오래 잊고 있던 러닝화를 꺼내 신었다.

발끝에 힘을 주자, 낯설 만큼 가벼웠다. 회사에서는 늘 무겁고 단단한 구두뿐이었으니까. 흰 반팔 티셔츠와 트레이닝복 차림은 나조차도 낯설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어쩐지 조금은 어색했고, 편하다 못해 심심하게까지 보여서 웃음이 났다.


늦여름의 공원은 덥지도, 시원하지도 않았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순간에도, 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치면 그제야 열기가 겨우 식는 기분이 들었다. 리듬을 잡으려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심장이 점점 박자를 맞추듯 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머리 위로 묘한 기운이 스쳤다 싶더니 빛이 가득한 하늘 아래 작은 물방울이 흩뿌려졌다. 갑작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는 아니었지만, 햇살 속에서 반짝이며 떨어지는 빗줄기가 러닝의 호흡을 끊어 놓았다.


어깨와 팔이 금세 젖어들었다.

계속 뛸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습관처럼 주변을 살피고 가까운 나무 그늘 아래로 몸을 옮겼다. 흰 티셔츠가 피부에 달라붙는 감각이 성가셨다.


숨을 고르며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순간, 옆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비를 피하려는 듯 나무 아래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나를 향했다.


“햇빛도 쨍한데 비라니, 신기하네요.”


낯설지만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옆에서 가볍게 흘러온 목소리에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옅은 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 속에서 빗방울이 흩뿌리듯 떨어지며 반짝였다. 바람결에 부서진 물기들이 팔에 스치고 번졌다.)*

“뭐… 이 동네 여름은 늘 이렇죠.”